기획 에세이
만화가-정용연의-철필촉-13---나와-최배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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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최배달 1 간류지마(巌流島)   목적지는 시모노세키였다. 대마도를 출발한 조선통신사 배가 일기도를 거쳐 닻을 내린 곳! 우리말로 하관(下關)이라 불리는 항구다. 일제강점기엔 관부연락선이 대한해협을 통해 수많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날랐다. 한반도와 혼슈를 잇는 역사적 도시가 바로 시모노세키다. 그 가운데 아카마신궁(赤間神宮)은 조선통신사들이 머물던 곳으로  에도로 가는  중간 기착지다. 1719년 조선통신사 제술관으로 뽑힌 신유한은 에도로 가는 7개월간의  여정을 꼼꼼히  기록했는데 이를 모아 펴낸 책이 바로 >이다. 박지원의 >와 더불어 조선시대 최고의 여행기로 꼽히는  >을  읽으며 자연스레 그 여정을 따라가 보고 싶었다. 일본 여행을 거듭할수록 그 욕망은 강해졌다. 시가현에 있는 일본 측 외교관 아메노모리 호슈 기념관을 갔을 때 본  복건(幅巾)은  그 욕망을 더욱 부채질했다. 복건은 사행을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가는 신유한이 호슈에게 준 선물이다.   “삼가 열 겹으로 싸서 소중히 보존하겠습니다.”   호슈는 자신의 말을 지켰다. 호슈와 그 후손들은 몇백 년의 시간이 지나도록 이를 간직한 것이다. 2026년 가을, 마침 나는 큐슈 여행을 계획하고 있
우리만화연대
  •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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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정용연의-철필촉-12--도시의-파파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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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대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영화 필름이 그렇다. 당대 상영되었던 필름이 남아있지 않아 영화사를 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일제의 식민 지배와 한국 전쟁 등 부침이 심했던 한국은 더 그렇다. 만화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만화의 역사를 증명해줄 작품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만화의 사회적 지위가 워낙 낮다 보니 원고를 보관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원고는 책이 나옴과 동시에 문하생끼리 나눠 가지거나 넝마주이에게 넘겼다. 경우에 따라선 쓰레기통으로 향하였다. 집도 좁은데다 이사 갈 때 짐이 되어서다. 책 또한 마찬가지다. 소수만 남아 만화 박물관에 가야 겨우 볼 수가 있다. 이는 한국 대본소 만화가 활황이던 80년대까지 이어진다. 애석하게도 나의 스승인 백성민 선생의 원고도 거의 없다. 1,998년 도서 대여점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일당백"(곽원일)이란  작품도  원고가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느라 미처 챙기질 못했단다. 스캔을 떠 디지털로 변환은 해두었으나 왠지 허전하다. 화이트 수정액과 스크린톤을 붙이기 위해 그은 칼자국을 디지털은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화를 그리는 이들 모두가 그러하듯 나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광이었다
우리만화연대
  • 3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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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정용연의-철필촉-11--호마는-북풍에-몸을-의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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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자율화 첫해인 1983년 중학교 3학년 때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연합고사 준비를 해야 하건만 나는 여전히 공부와 담을 쌓고 살았다. 성적이 바닥을 기었다. 마침 프로야구 페넌트 레이스가 시작되어 TV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음 선을 보인 프로 씨름도 볼거리였다. 우리나라 최고 미인을 뽑는 미스코리아 대회도 꼭 봐야만 했다. 강수연, 최재성 등이 나오는 TV 드라마 >도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이들을 모두 보려면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거리는 전투 경찰이 쏘아 대는 최루탄 가스로 매캐했다. 길을 걷다 눈물을 흘리기 일쑤였다. 우리가 사는 곳은 청량리로 네 집이 함께 세 들어 살았다. 방과 거실이 함께 있는 안채는 신혼부부가 세 들어 살았는데 여자는 청량리 전신전화국에 다녔고 남자는 놀았다. 돈을 벌지 못한다는 자격지심 때문이지 남자는 목소리를 자주 높였다. 여자도 이에 질 새라 맞받아쳐 시끄러웠다. 아무리 봐도 알콩달콩한 신혼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가운데 최루탄 가스가 담을 넘어 마당까지 넘어오면 남자가 화를 냈다. 대학생들이 하란 공부는 안 하고 데모질만 한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알 수 없었다. 무슨 이유로 최루탄 가스에 눈물을 흘
우리만화연대
  • 1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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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정용연의-철필촉-10--오씨-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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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다음 시간 투투야. 예습은 했냐?”   ”아니“   1학년 6반 담임 선생님 별명은 투투였다. 얼굴에 살집이 좀 있는데다 입술이 두툼해 그렇게 불렸다. 투투는 당시 인기 리 방영되던 TV 애니메이션 >에 나오는 개구리다. 힘으로 무지개 연못을 지배하는 악당이다. 오른팔인 가재를 앞세워 수확물의 반을 빼앗아 간다. 그뿐 아니라 한 달에 반을 투투를 위해 일해야 한다. 일단 생긴 것부터 우락부락하다. 무엇이 불만인지 늘 화가 나 있다. 외동딸인 아름이게는 한없이 자상하지만 무지개 연못의 개구리들에겐 공포 그 자체다. 가재와 함께 절대 연민의 감정을 가질 수 없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다. 그게 설사 전과 9범의 흉악한 전과자일지라도. 뒤늦게 밝혀지지만 투투 또한 여느 개구리들과 마찬가지로 피해자였다. 수호신이라 불리는 메기의 사주로 어쩔 수 없이 악당 노릇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투투는 그간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며 왕눈이와 더불어 메기와 싸운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매를 잘 들지 않았다. 학급 분위기를 너무나 흐려 수업이 불가능할 때야 비로소 매를 들었다. 적어도 학생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담아 매를 대는 일은 없었다. 외모와는 달리 선생님은 국어국문
우리만화연대
  • 1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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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정용연의-철필촉-9---줬다-뺏는-건-나쁜-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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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이를테면 소개팅 같은 거다. 주선자가 상대에 대해 칭찬을 하도 많이 해 기대를 잔뜩 하고 나갔다가 실망하고 돌아오는 것. 누구나 그런 기억 하나 쯤은 간직하며 살아갈테다. 반대로 아무 기대 없이 나갔다가 평생의 연을 맺기도 한다.   슬럼프가 길었던 후배 N에게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는 운명을 뒤바꿔 놓을 사건이었다. 대형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기획물을 맡게 된 것이다. 출판사와 다리를 놓아준 이는 동료 작가 K였다. 일이란 게 참 묘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일 한 번 소개 시켜 주는 법에 없는데 친하지 않던 K가 자신을 구원해준 것이다. N에 맡겨진 일은 100만 권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를 만화화하는 작업이었다. 분량이 여섯 권에 이르렀다. 선인세도 출판사에서 일 만권 분량을 미리 지급해 생활도 어느 정도 보장받았다. 출판 시장이 무너진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2008년 당시엔 흔한 일이었다. 베스트셀러 상위에 링크된 학습만화가 여럿이었다. 학습만화를 그려 빌딩을 사 임대료를 받아 생활하는 작가도 있었다. N은 자신에게 다가온 기회를 날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콘티를 거듭 수정했
우리만화연대
  • 1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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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정용연의-철필촉-8---만화가의-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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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마 옮기기 뭣하지만 만화가가 왜 이리 글을 잘쓰냐는 소리를 들었다. 기쁘면서도 슬펐다.  기쁜 건 글쓰기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고 슬픈 건 만화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머물러 있구나 싶어서다. 만화는 제 9의 예술로 불린다.  회화, 문학, 음악, 무용, 건축, 연극, 영화보다 출발이 늦다.  근대, 신문 지면을 통해 탄생했다. 한 컷으로 비틀린 현실을 고발했고 연속된 컷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람들은 만화를 보기 위해 신문이 배달되기를 기다렸다.  신문 만화는 출판 만화로 확장되었다. 호흡도 점차 길어져 짧게는 한 권, 두 권, 세 권,  길게는 몇십권에 이르도록 이야기가  끝이 나지 않았다. 100권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  가판대와 대본소 그리고 서점을 통해 유통되었다.  만화 왕국인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편의점이 독자와 만나는 주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 편의점 어딜 가더라도 만화책들과 만화 잡지들이 비치되어 있다.  90년대 말은 한국 만화의 위기였다.  대본소 만화는 하루 한 권 출간이란 뜻의 '일간 만화'라 불리며 추락을 거듭했고  일본 문화의 개방과 더불어 일본 만화가 쏟아져 들어왔다.  아니 일본 문화 개방
우리만화연대
  • 2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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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정용연의-철필촉-7--메뚜기도-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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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도 한 철'이란 말이 있다. 지금 비록 잘 나가고 있지만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 말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이들은 연예인이지 싶다. 지금의 인기가 곧 사그라들 거란 예감. 그래서 더 열심히 행사를 뛰어다니며 돈을 모은다. 8,90년대 대본소 만화가 호황일 때 스토리 작가들은 시쳇(時體) 말로 돈을 긁어 모았다.  믿기지 않지만 어떤 작가는 이틀만에 스토리를 한 권(98페이지)씩 썼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받은 돈이 왠만한 봉급생활자 한 달치 월급과 맞 먹었단다.  작품에 자기 이름이 표기되지 않는다는 것 하나 빼고는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당시엔 만화가가 스토리를 쓰지 않아도 '글 그림 아무개'라고 표기하는 게 관행이었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작품들 상당수가 그랬다. 스토리 작가의 이름을 표기하지 않았다.    한국 만화의 어두운 역사다.     스토리 작가들만큼은 아니더라고 데셍맨과 터치맨들 수입 역시 쏠쏠 했다.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 작가로부터 가불을 해 쓸 수가 있었다. 실력있는 데셍맨들은 스카우트의 대상이 되었다. 이적료를 받고 화실을 옮겨 다녔다. 모 히트 작가는 데셍맨에게 자기 일을 계속 해주는 조건으로 아파트 한 채
우리만화연대
  • 2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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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정용연의-철필촉-6--선데이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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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황색 저널의 대명사다. 끊임없이 미스미디어와 사람들 입을 통해 소환된다. 7~80년대 대중문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다.   주로 선정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연예인 신변잡기와 '사건과 실화' 류의  기사가 지면을 장식했다. 사회 현실을 이야기 하는 기사는 단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정치 기사도 없었다.  정치인은 가끔 가십성 기사로만 등장할 뿐이었다. 광고는 극장식 카바레와 화장품을 비롯한 소비재가 대부분이었다.  철저한 오락 중심의 잡지임을 천명했다.   >이 창간 된 것은 1968년으로 68혁명이 있던 그 해다.  모 기업은 서울신문으로 공보처의 감독을 받던 관영 언론이었다.  어찌 보면 정부가 나서 성인 잡지 창간에 힘을 보탠 것이다. 3S 정책의 일환이었는지도 모른다.  >은 주간지다.  > > > >같은 성인 잡지들과 더불어  가판대에 내 걸렸다. 처음엔 80쪽으로 시작해 132쪽으로 정착되었다. 경쟁지들 사이에서 >은 독보적이었다.  전성기에는 20만 부 넘게 팔려 서울신문의 적자를 상당 부분 메꿨다고 한다.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폐간은 1991년으로 가판대에 내 걸린 기간이
우리만화연대
  • 2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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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정용연의-철필촉-5--간혹-소설가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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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소설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만화로 그리면 어떠냐는 제안을 해온다. 말씀은 고마우나 다 거절한다. 거절 이유는 만화를 너무 쉽게 본다는 거다. 만화를 단순히 자신의 작품을 빛내줄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작가에 대한 존중도 없다. 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어디선가 본 이미지 몇 개만 보고 제안을 해오는 것이다. 만화화 제안을 해오려거든 내가 발표한 작품을 찾아 읽어보는 건 기본 아닌가?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면 언제든  책을 살 수 있다. 혹 책 살 돈이 없다면 도서관에 가 책을 빌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이가 서너달 만에 소설책 한 권을 썼다고 하자. 내가 그 걸 만화로 그리려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소설 문장 하나를 이미지로 만들어내기 위해선 적지 않은 노동력이 투여된다. 하루 이틀 아니 며칠이 걸릴 수도 있다. 독자의 눈이  짧게는 2~3초 길게는 4~5초 머무는 그 순간을 위해 뼈를 갈아 넣는다.   '왜적이 대거 침입하였다. 도적의 무리가 백만이고, 도적의 배가 서로 맞닿아 바다를 뒤덮었다.'  나는 몇 년 전 도세순이란 이가 임진왜란 중 쓴 >를 만화로 그렸는데 저 문장을  표현하는데 몇날 며칠이 걸렸다.  이 원고는 미완성인 채로 책상
우리만화연대
  • 2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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